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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푸념겸 제 경험담을 공유합니다.
저는 작년 9월경에 스타트업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제가 들어가려고 했던건 아니고 예전에 일했던 몇살많은 동료 개발자였던 분이 간절히 러브콜을 했습니다.
입사전에 "저는 게임쪽으론 너무 안한지 오래됐고 슬로우 스타터라 생각보다 빠르게 습득하지 못할거다"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극심한 인력난에 고생하던 그 형에겐 귓등으로도 안들린듯 했습니다.
조건은 기존 회사에서 받던 연봉 그대로(그런데 잘못듣고 100만원이 깍였군요)
나중에 회사 잘되면 개국공신 대우(솔직히 이건 공염불일 가능성 100%알고 들어간거고요)
제 입장에선 어차피 언리얼이든 유니티든 현업에서 필요하지만 집에서 공부하면 티 안나는걸 배운다 생각하고 열심히 할 각오로
들어갔습니다.
스타트업은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다들 아시다시피 엄청나게 힘든곳임은 직감하실 겁니다.
한 삼개월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할정도로 절 까기 시작합니다.
경영자라고 두명밖에 없지만 본인들 생각만큼 실력이 오르지 않는다고..
이렇게 일하면 곤란하다고(이미 야근야근중이었는데)
처음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실력으로 이렇게 호되게 까인적이..
게다가 같이 들어왔던 이사급 그래픽 디자이너는 아예 방출시키더군요.
물론 스타트업이 효율 100% 안나오면 짜르는거야 당연하지만 과정이 너무 엉망이었습니다.
사전통보나 제대로된 커뮤니케이션 없이 일방적인 통보.
옆에서 보는 저는 진심 멘붕이었습니다.
게다가 들어와보니 이회사, 명문화된건 하나도 없고 다 옆에서 줏어들어야 소통이 되는 스타일입니다.
살짝 흘려서 한얘기가 어느덧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이 되고 저같은 직원한테 "내가 얘기했잖아" 로 통보되는 그런 구조입니다.
초반부터 커뮤니케이션에 엄청난 장벽이 되는 부분인데 두 경영자는 그걸 좀 즐기는 느낌입니다.
살인적인 일정에 자기개발도 해야하고 밑에 직원도 한두명 부리면서
불과 10개월만에 회사 화장실에서 울고싶던 기억이 한두번이 아닙니다만 어쨌든 내실력 키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진짜 제가 글재주가 없어서 확 와닿게 설명할 자신이 없지만 제 인생에서 이렇게 미친듯이 노력해본적은 처음입니다...
사람도 점점 불고 회사도 외형을 확장하는거 같습니다만 속도전으로 회사 내부의 결속은 아예 망가졌습니다.
각 파트의 팀장급(프로그래밍, 디자인, 경영)은 만약 셋중에 하나라도 나가거나 쫓겨날시 같이 퇴사하겠다고 맘먹었을 정도니까요.
퇴사를 빌미로 뭘 얻어내려는것도 아닙니다. 너무 힘들어서 같이 나가려는 것뿐입니다...
물론 대표와 이사가 공이 없는것도 아니고 나태한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일중독이라 걱정이지..
그리고 그 둘이 회사의 외형을 확장시키는데는 중요한 역할을 한게 사실입니다.
아마 그둘의 능력 아니었으면 이정도까지 가지도 못하고 스타트업으로써 생을 마감했겠죠.
하지만 문제는 망원경만 보고 배안에 선원들 안둘러보는 선장같은 형국이 되어버렸죠.
회사 내부의 불만은 폭발직전이고 일촉즉발인데 기약도 없는 원피스 가자고 채찍질 하는 형편이니까요.
조그만 섬은 시간없다고 다 지나치고요.
10개월만에 참다참다 목소리좀 냈습니다.
미친듯이 힘들다고, 싫은티좀 내니까 곧바로 "너만 힘드냐" 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때쯤 느낀건
1. 스타트업은 같이크는 구조가 아닙니다. 스타트업에 도전하려면 자기 파트의 역량을 다 갖추고 들어가셔야 합니다.
2. 스타트업이 속도와 효율이 중요하지만 직원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탈출하세요.
3. 명문화된 스톡옵션(사실상 별 의미 없지만)같은 계약이 없이 월급만 받는다면 당신은 그냥 직원일 뿐입니다.
4. 힘들때 사람은 본성을 드러냅니다. 경영자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확인하기엔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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